韓文史哲/韓國時事

캐나다 원자로 도입 놓고 한.미 `신경전'

마장골서생 2010. 1. 13. 00:04

캐나다 원자로 도입 놓고 한.미 `신경전'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 중반 한국이 캐나다로부터 원자로 도입을 추진했지만 한국의 프랑스산(産) 재처리시설 도입을 문제 삼은 미국의 제동으로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서 난항을 겪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또 캐나다 정부는 1973년부터 한국이 자국산 원자로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핵비확산조약(NPT) 비준을 보류하고 있다는 이유로 한때 원자로 판매 교섭을 일체 중단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통상부가 15일 공개한 ‘캐나다 원자로(CANDU)형 도입 차관(1975년∼1977년)’ 관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국과 캐나다 양국 정부는 협상 체결 시한이었던 1976년 1월 말 직전에 협상 결렬의 위기까지 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당시 한국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미국이 반대했고 이에 캐나다 정부가 동조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1976년 1월 9일 김영주 당시 주캐나다 대사가 박동진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전문에 따르면 캐나다는 한국이 프랑스로부터 도입하려는 재처리시설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하지않는 한 ‘원자력 평화적 사용에 관한 협력 협정’에 서명할 가능성이 없음을 시사했다.

김 대사는 이 전문에서 박 장관에게 “캐나다 외무성은 한국이 재처리 시설에 대한 미국의 반대에 ‘6개월 내에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 문제의 해결이 서명의 전제조건이 됐다는 입장”이라고 보고했다.

‘미국이 원자로를 판매하지 않는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가 원자로를 판매할 수 없다’는 캐나다 정부의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이다.

그는 또 “캐나다 외무성의 당국자가 ‘한국이 재처리 시설 도입 자체를 취소하지 않는 한 협정 서명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면서 “캐나다 정부로부터 원자로를 도입하는 계획은 근본적인 난관에 봉착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사는 같은 달 11일과 13일 전문을 통해 “최근 런던에서 열린 7개국 비밀회의와 12일 또는 13일 뉴욕에서 미국과 캐나다 당국자의 접촉이 있었다”며 “캐나다의 입장이 더욱 강경해진 계기일 수도 있다”고 보고했다. 캐나다의 태도 변화에 미국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한국 외무부와 캐나다 주재 한국대사관 사이에 하루에도 수 차례 씩 전문이 오가고 양국 외무장관이 각 상대국 대사들과 수 차례에 걸쳐 면담하는 등 긴박하게 돌아가던 양국 간 협상은 한국 정부가 재처리시설의 도입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같은 달 26일 서울에서 체결된 것으로 외교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당시 캐나다 외상은 결국 같은 달 30일 “양국 정부간 협정이 26일 서울에서 서명됐다”며 “본 협정 서명으로 한국은 캔두(CANDU)를 도입할 수 있게 됐으며 한국이 이행키로 한 안전조치는 국제 및 캐나다 안전조치 정책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정식으로 발표했다.

한편 이에 앞선 1974년 5월 인도가 캐나다로부터 도입한 원자로(NRX)를 이용해 핵폭탄 실험을 하자 캐나다는 한국 정부에 조속한 NPT 비준을 요구하며 원자로 판매 교섭을 중단했던 사실도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교섭이 중단되자 김동조 당시 외무부 장관은 같은 해 11월 캐나다를 방문해 앨런 맥아흔 외상에게 “북한, 중공 등 주변국들이 NPT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만 가입하는 것은 안보상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핵무기를 제조할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캐나다는 NPT 비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집, 결국 원자로 교섭은 9개월간 중단됐으며 한국이 1975년 2월 NPT를 비준키로 결정하고 이런 방침을 캐나다에 전하면서 협상은 가까스로 재개됐다.

김 장관은 김 대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맥아흔 캐나다 외상에게 2월 25일자로 우리 정부의 NPT 비준 방침을 전하고 이런 사실을 미국과 영국에 아직 알리지 않았으니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도록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한국은 NPT 국회 비준과 프랑스 재처리시설 도입을 둘러싸고 미국 등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끝에 1976년 1월 캐나다와 협정을 체결하고 바로 착공에 들어가 87개월만인 1983년 4월 한국에서 유일한 중수로 원자로인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준공했다. 2008.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