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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만주국 황궁에서 본 일 천황가의 비밀

마장골서생 2009. 9. 14. 00:02

옛 만주국 황궁에서 본 일 천황가의 비밀

 

중국 창춘(長春) 시내의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잡은 옛 만주국 황궁.

마지막 황제 푸이(簿儀·1906-1967)가 청의 위대한 부활을 꿈꿨던 곳이지만 중국인에게 이곳은 만주국이라는 괴뢰정권을 세워 중국 동북지방의 침략을 정당화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본산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중국인은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정권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위(僞)만주국’이라고 부르며 지금은 박물관이 된 황궁도 ’위만(僞滿)황궁박물관’으로 부른다.

옛 만주국 황궁은 현재 중국 국가관광국의 5A급 관광지로 지정돼 있다. 과거 푸이가 거주했던 건물과 집무실, 방공호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어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특히 이곳에서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베일로만 가려져 있던 일본 천황가를 상징하는 신물(神物)과 제사의식을 담은 사진들.


황궁에서 가장 큰 건물인 화이위안(懷遠)루 2층에는 만주국 황제시절의 푸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이중에는 푸이가 1940년 7월 두번째로 일본을 방문해 히로히토(裕仁) 일왕(日王·천황)을 만난 뒤 천황가의 신물을 갖고 귀국하는 푸이의 모습, 신물과 제사의식을 보여주는 사진 등이 포함돼 있다.


푸이의 두번째 일본 방문은 만주국 국민도 황민(皇民)으로 만들려는 일제 관동군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관동군은 1938년 8월 푸이에게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만주국 국민의 정신적 상징으로 섬겨야 한다“고 요구했고 푸이는 1940년 5월 진무(神武)천황 기원 2천600년 기념행사에 참석차 일본을 방문해 히로히토 천황을 만난 자리에서 칼, 청동거울, 곡옥 등 3가지 신물을 받았다.


푸이의 두번째 일본 방문 시점이 바로 일제가 1940년 2월부터 우리 민족에게도 창씨개명을 강요했던 시기와 맞물리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두 달 뒤 귀국한 푸이는 황궁안에 건국신사(建國神寺)를 세우고 여기에 이들 신물을 안치했다. 옛 만주국 황궁에는 푸이가 갖고 온 신물의 사진과 건국신사에서 건국원신(建國元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푸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일본 천황가의 신물이나 제사의식 장면은 그간 일반인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일본 천황가의 기원을 연구했던 홍윤기 한일역사문학연구회장은 22일 ”천황가의 제사의식은 오래 전 일본의 한 신문에 사진으로 잠깐 공개된 적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되고 있는 천황가의 비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옛 만주국 황궁에서는 이들 사진 외에 일본 천황가를 상징하는 실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푸이가 건국원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건국신사도 지금은 돌로 된 기초만 남아 있으며 제관(際官)이 입던 제복 정도가 전시실에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