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무엇인가
한국인터넷언론협회 주최 - 趙甲濟의 기자교실 제2기 제1교시 강의록
오늘은 기자란 직업은 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기자란 직업을 말하기에 앞서 우선 어떤 사람이 기자가 되는가 하는 것을 봅시다. 제가 30여년 동안 기자라는 직업을 관찰해보니까 보통 세 가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기자가 되고 기자로서 성공합니다.
첫째 기자는 대체로 호기심이 많습니다.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뭘 해도 재미 있어 한다는 겁니다.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자기가 모르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재미 있어 합니다. 호기심이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겁니다. 이게 기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 성향입니다.
그 다음이 정의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의감이라는 것이 주로 약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가게 되니까 기자는 본질적으로 약간 좌파적 경향을 띄게 됩니다. 부자보다는 못사는 사람, 또 검사보다는 피의자, 이런 쪽으로 관심을 가집니다. 정의감의 기본이 그렇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명예욕. 이것은 높은 지위에 오르겠다는 實名의 명예욕보다는 기사를 통해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匿名의 명예욕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자기의 이름을 앞세운다기보다는 기사를 내세웁니다. 우리가 先公後私(선공후사)라는 말을 씁니다. 공적인 것을 앞세우고 사적인 것을 뒤로 돌린다는 것으로 동양의 공직자 윤리입니다. 기자도 비슷합니다. 기사를 앞에 내세우고 이름은 그렇게 내세우지 않는, 익명의 정열입니다. 정보원도 비슷합니다만 정보원은 완전히 익명인 반면, 기자는 요즘 記名(기명)기사로 이름을 내기도 합니다. 어쨌든 기자의 명예욕은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명예욕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런 세 가지 성향을 가진 사람이 기자가 되면 성공합니다. 이런 사람은 기자라는 직업을 즐기면서 하기 때문이지요. 기자라는 직업은 의무를 너무 앞세우면 부러지기 쉽고 오래 못갑니다. 기자의 의무란 도덕성인데 이 도덕이라는 게 좋은 것이지만 사람을 딱딱하게 만들고 사물을 너무 규격적으로, 법적으로 보려고 하는 성격을 갖게 합니다. 저는 경험적으로 기자라는 직업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좋은 일도 하고 사회正義도 더 많이 세운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에는 3대 금물도 있습니다. 여기 속하는 사람들은 기자에 잘 맞지도 않고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기자생활에 실패하는 경우를 좀 많이 봤습니다.
첫째로 오만한 사람. 기자는 당당해야 하는데 오만한 것을 당당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당함은 오만함과는 다르죠? 겸손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데 오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舊惡(구악)기자라 하는데 옛날에는 이런 기자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줄어들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부처 출입기자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취재하면 자기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장관을 취재하면 자기가 장관이 된 것처럼, 이렇게 어깨에 힘을 주는, 그런 경향이 많습니다. 오만한 사람이 기사를 잘 쓴다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하지만 오만하면 일반적으로 좋은 기사를 쓰기가 힘듭니다.
그 다음 소극적인 사람, 실내적인 사람, 현장에 가기 싫어하고 회사에서 집안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가지고 뭘 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습성이 있는 사람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느림보. 일이 느린 사람들. 기자는 기본적으로 시간과 다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偏向的(편향적)이고 傾向的(경향적)이고 派黨的(파당적)인 사람. 다 같은 말입니다. 어느 쪽으로 설려는 사람, 경향성이 있다, 좌파적 경향성이 있다, 우파적인 경향성이 있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어느 쪽이든 경향성은 언론과는 잘 맞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자란 직업이 서야 될 자리는 항상 객관적인 중간적인 위치입니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해야 할 질문은 ‘사실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편이냐’가 아닙니다. 사실이 뭐냐,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묻는 직업이 기자인데, 경향성이 먼저 머리에 들어가면 누구편이냐고 묻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 애국운동하는 것은 좋지만 애국운동도 기자의 원칙, 저널리즘의 正道(정도)에 입각해서 사실과 진실을 가지고 해야지 경향성을 너무 앞세워 버리면 기자가 아니라 운동가가 돼 버린다는 점입니다.
원칙은 이렇습니다만, 한국이 현재 처한 위치는 애국운동도 할 수 있고 동시에 기자도 할 수 있는 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경향성을 가지면 안되지만 대한민국 기자는 경향성을 가져도 됩니다. 물론 그 경향성은 애국적이어야 되죠. 그 경향성과 저널리즘의 원칙이라는 두 가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을 잘 조화시켜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일제시대 志士(지사)형 기자가 하나의 모델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샐러리맨 기자가 아니라 지사형 기자. 지사형 기자들은 기사를 쓰되 진실을 보도하면서 독립운동도 한 것처럼 이제는 진실을 보도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도 지킨다고 하는, 이런 입장을 분명히 하면 애국적 기자도 가능합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회라면 애국적인 기자라는 말은 별로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국적인 기자는 애국적인 기사만 쓰고 비애국적으로 보이는 기사는 쓰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자는 비애국적으로 보이는 기사도 써야 합니다. 국익에 손해가 되는 것 같아도 ‘진실이기 때문에 이것은 써야 하겠다’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여러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 첫째는 사실을 빨리, 공정하게 보도하는 게 기자라는 직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을 보도하되 빨리, 速報(속보), 그리고 공정하게 보도해야 합니다. 이게 세 가지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면 기자가 아닙니다. 기자란 직업을 가지고는 허위를 빨리 보도할 수 없고, 허위를 빨리 공정하게 보도할 수도 없죠. 사실을 느리고 공정하게 보도한다면 그건 기자로서는 안맞고 교수로서는 맞습니다. 사실을 느리게, 공정하게 보도하고싶다면 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을 빨리, 공정하게 보도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항상 가슴에 새겨놓으면 자신이 하고 있는 게 기자로써 제대로 가는 것이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을 다 합친 것이 바로 특종입니다.
특종은 사실을 공정하게 빨리 보도해야 한다는 조건을 150% 충족시키는 겁니다. 특종은 그 사실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속도에서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단서가 붙습니다. 때문에 특종은 특별한 기사입니다. 저는 기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나 기자가 된 사람에게 제일 먼저 부탁하는 것이 특종에 대한 욕심을 죽을 때까지, 기자를 그만둘 때까지 절대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특종에 대한 욕심, 특종에 대한 쾌감, 특종으로 인한 즐거움, 특종에 대한 야망을 놓는 즉시 기자가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유가 어떨까요? 올림픽 선수가, 신기록 세우는 것을 별로 재미없게 생각하고 시들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선수가 아니죠? 예술하는 사람이 걸작을 남기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예술이 안되듯이 기자는 특종을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특종이라는 것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어떠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창조입니다. 특종은 남과 나눠갖는 것이 아닙니다. 특종은 독점하는 것입니다. 아주 큰 정보를 독점해서 가장 빨리 보도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기자의 창조입니다. 인간의 일 중에서 가장 고귀한 일이 창조라고 하는데 기자에게는 특종이 창조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자라는 직업을 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데 ‘시간의 사나이’다, 기자는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조건 하에서 생활하는 겁니다. 기자는 항상 마감시간이 있습니다. 통신기자는 마감시간이 없죠? 요새 인터넷 언론도 마감시간이 없습니다. 기사거리를 알았을 때 바로 기사를 올리니까요. 신문은 조간, 석간이 있습니다. 방송 또한 몇 시 뉴스처럼 마감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종의 경우에는 브레이크 뉴스 등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아무튼 기자는 마감시간이라는 강박관념을 짊어지고 사니까 항상 초조해지고 항상 긴장돼 있어야 됩니다. 긴장과 초조. 특히 초조한 것. 기자는 원래 초조해야 합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서 초조해하면 불안해보이고 가볍게 보이기도 하지만 기자는 초조해야 되는 직업입니다. 초조해하지 않으면 기자가 아닙니다. 사건이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고 사건이 생기면 바로 대응을 해야 하고 늘 경쟁상대 기자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기자의 모습니다.
그 다음, 기자가 쓰는 기사란 무엇인가? 기사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경제적으로, 쉽게, 빨리 전달하는 그 문장이 바로 기사입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경제적으로-즉 가능하면 짧게 쓰는 것입니다-쉽게 빨리 전달하는 문장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중복없이 최대한 경제적인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쉬워야 한다. 우리가 철학 서적을 쓰는 게 아닙니다. 한글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게 쉽게 써야 한다. 그 다음 빨리 써야 한다. 정확하게, 짧게, 쉽게, 빨리. 이게 바로 기사문장의 4대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쓰고, 짧게 쓰고, 쉽게 쓰고, 빨리 쓰고. 이 짧게라는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기사가 짧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짧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낱말의 중복이 없고 중복되는 표현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중에 기사 문장을 배우시면 말씀드리겠지만 ‘그러나, 한편, 또다시’ 등의 말들, 이런 표현은 쓰지 말자. ‘~하였다’로 끝나는, 긴박하게 흘러가는 문장이 좋은 기사문장이라는 뜻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기자는 지금 아프리카에서 기자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신문 기자로 생활하는 것도 아니고 뉴욕타임스 기자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역사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의 언론은 한국 역사의 主役입니다. 언론이 역사를 만들어 나갑니다. 이런 현상은 세계에서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한국은 언론의 비중이 굉장히 높은 나라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래요. 구체적으로 보면 조선 시대부터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조선조의 지배층이 선비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글을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또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교문화라는 게 그런 선비들을 지배층으로, 또는 권력자로 만들어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정치 이데올로기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게 과거시험입니다. 과거시험이 뭡니까? 글 잘 쓰는 사람이 출세하는 게 과거시험 아닙니까?
마지막 과거시험이 갑오경장이 일어난 해였다고 기억합니다만, 그 때 과거 시험 응시생이 15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 응시생 중 15명을 뽑았다고 합니다. 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당시 조선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언론이 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조정에 들어가면 상소문을 잘 써서 왕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또 탄핵문을 잘 써서 자신의 政敵(정적)을 몰락시키기도 하는 이런 역할을 했습니다. 또 선비들은 作黨(작당)을 해가지고 지방에 있는 선비들끼리 상소문을 돌려서 여론을 형성해 상소문을 올려가지고 중앙의 정치를 바꾸기도 했던, 이런 언론의 역사가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조선은 언론인의 天國이었어요. 조선 시대 당파싸움의 수단은 유럽 등과 같은 칼이 아니라 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유교문화와 언론이 딱 맞아떨어진 겁니다. 이 전통이 개화기 때로 넘어가면,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우리 개화 운동의 가장 중심에 언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개화기 때 유명한 사람들은 거의 다 언론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입니다. 독립신문을 만든 서재필, 이승만 대통령은 매일신문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를 만들었습니다. 사장이었죠.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기자 출신이 초대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유명하게 된 것도 바로 언론 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분이 매일신문도 만들고 또 감옥에 가서도 주필 자격으로 계속 논설을 쓰고, 미국에 가서도 잡지를 만들고, 강연을 통해서, 저작을 통해서, 또 방송을 통해서,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밝히고 이것이 우리 국민들의 머릿속에 입력되고 입력되고 하니까 1945년에 해방된 후 우리 국민들 마음 속에 이승만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죠. 그래서 공산당들이 무슨 조직을 만들 때도 이승만을 대표로, 주석으로 모시기도 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카리스마의 원천은 바로 이승만이 언론 활동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도 언론이 주도적으로 한 거죠. 실질적으로 독립운동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기관이 있다면 저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꼽습니다. 물론, 임시정부도 있었고 독립군도 있었지만 그들은 恒時的(항시적)으로 한 게 아니라 가끔, 기회가 있을 때 했지만 조선, 동아일보는 1920년대 신문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는 항상 독립운동을 한 겁니다. 그리고 조선, 동아일보 안의 면면들을 보면 식민지 시대 때의 엘리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좌익의 박헌영 같은 사람은 조선일보 기자, 여운형 씨도 신문사 사장을 했고, 한민당을 만든 김성수도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고 송진우, 장덕수도 마찬가지.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던 안재홍 씨도 마찬가지. 조병옥도 조선일보 사원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한국의 언론, 특히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정부가 없던 우리 민족의 정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일제가 압제를 하면 거기에 굽혀가지고 친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권력의 누르기가 약해지면 잡초처럼 바람처럼 곧 일어나고 때로는 일제 총독부와 타협도 해가면서 조선인이 민족혼을 잃지 않도록 불씨를 간직해 온 것이 조선, 동아일보의 역할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해방된 이후에 건국, 호국,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언론이 한 역할은 다 잘 알겠지만 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4.19는 어떻게 일어났느냐? 쉽게 말하자면 신문이 선동을 해가지고 4.19가 일어난 겁니다. 4.19는 언론과 학생의 합작품이죠. 예컨대 4.19의 前단계인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마산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경찰관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가지고 학생들 수십 명이 죽고 한 것이 도화선이 돼 전국적으로 번져가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이라는 학생의 시체가 바다에 빠졌다가 발견됐습니다. 그 시체사진,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 떠오르는 사진을 당시 부산일보 사진기자가 찍었습니다. 그것이 全신문에 다 실렸습니다. 이 사진 하나가 4.19를 일으켰다, 확대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줬습니다.
10.26도 1979년 언론의 역할과 굉장히 큰 관계가 있습니다. 그때는 긴급조치 9호 시대라서 反정부적인 기사를 쓸 수 없는 시대였지만 우리 언론들은 최선을 다해서 그 진실을 보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YH사건’이라든지 ‘도시산업선교회사건’이라든지 이 곳에 계시는 분들이 이름을 들어도 잘 모르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특히 1979년 10월 초 국회에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유정회와 공화당이 제명하는 사건도 아주 크게 보도를 했습니다. 당시 제대로 된 언론은 거의 다 신민당 김영삼 편을 들었습니다. 그 때 신문을 찾아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의 연장선에서 釜馬(부마)사태가 10월 16일 일어나고 비상계엄령이 펴지고 김재규가 마음이 바뀌고 하면서 10.26이 나는데 이것도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987년 6월 사태, 그 때 전두환 시대였지만 언론의 역할이 30% 이상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6월 사태로 오게 되는 여러 가지 과정 중에서 그 해 1월에 있었던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이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는데 이 사건은 중앙일보 사회부 검찰 출입 기자가 특종을 해서 사회면에 2단 기사로 자그마하게 난 기사였습니다. 이것을 동아일보가 확대 발전시켜서 다음날 ‘이것은 고문에 의한 죽음이다’라는 기사로, 남이 특종을 한 것을 이어받아 더 큰 특종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중앙일보, 동아일보 기자들의 취재에 의해서 경찰이 고문하다 학생이 죽었다는 게 밝혀집니다. 이것이 정치권, 학원으로 번져가서 6월 사태라는 全국민적 저항운동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그 당시에는 사실 전두환 정권이 언론을 통제할 방법도 없었어요. 여론이 들고 일어나니까. 그 당시 신문을 읽어보면 이게 독재시대 때 신문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요새 생각하는 암흑 시대의 신문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쓰고 싶었던 것의 90%는 썼습니다. 나머지 10%는 정보부나 군대, 대통령의 非行(비행)을 고발하는 것들로 이런 기사는 못썼습니다만 다른 것들은 다 쓸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것이 6.29선언이라는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화 선언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권교체의 과정을 언론의 역할을 중심으로 해서 본다면 1992년 大選에서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되고 김대중 씨가 낙선됐다, 이것도 언론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을 거에요. 이때 이선실 간첩사건이라는 것을 정형근 씨가 안기부 수사국장하면서 했습니다. 이선실 간첩사건을 수사하다보니까 직간접적으로 김대중 캠프하고 관련된 사람들이 많았어요. 김대중의 비서 같은 사람들이 조사받고 구속되는 이런 사안으로 발전해서 1992년 선거에서는 김대중 씨를 이념적으로 의심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만약 이때 가정을 해보면,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후보한테 약 1천억 원 이상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다 하는 이런 사실을 기자가 폭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지금은 증명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기자들이 몰랐습니다. 1992년 선거는 이념문제, 소위 말하는 색깔론이라는 게 큰 하나의 선거주제가 되었기 때문에 김대중 씨가 떨어졌습니다.
1997년을 봅시다. 1997년 선거에서는 이회창 對 김대중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회창 씨가 김대중 씨의 이념적인 불투명성, 친북적인 면을 정면으로 제기해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 사회가 좌경화한다, 친북화한다는 것을 정면으로 제기했었어야 될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못했지요. 왜 못했냐 하면 이회창 캠프에서는 '그렇게 하면 색깔론이다 해서 역풍이 불어 우리가 오히려 되말린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선거주제가 무엇이 되었느냐. 이회창 씨 아들의 병역 기피 여부 의혹이 문제가 되니까 이회창 씨는 守勢的(수세적)이 되고 김대중 씨는 攻勢的(공세적)이 된 겁니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냐? 그것은 지나고 보면 언론이 97년 선거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씨가 정권 잡고나서 한국 사회를 좌경화하는 것을 막을 책임이 언론에 있었는데, 그 때 이념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어야 하는 책임은 이회창 쪽에 있었다기보다는 언론에 있었지 않느냐,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대중 씨의 집권을 허용했다, 나는 이렇게 봅니다.
2002년 선거를 우리가 돌아보면 여기도 언론의 역할에 의해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2002년 가을에 들어가면 큰 뉴스가 두 가지에요. 한나라당에서 제기한 對北송금 사건과 노무현 측에서 제기한 김대업-사기꾼이라 밝혀졌지만-에 의한 이회창 아들 병역문제가 그것입니다. 나중에 하나 덧붙여진 게 두 여중생 사망으로 인한 촛불 시위가 있죠. 이 두 개가 우열을 다투면서 가다가 11월, 12월이 되면 촛불시위 쪽으로 언론보도의 주도권이 넘어갑니다. 어용 방송이 적극적으로 이것을 중계방송하면서, 방송이 좌파적 이념을 깔고서 보도하면서 사실을 무시해버리고, 두 여중생 가족에게 미군이 얼마나 신속하게 보상을 했는가 하는 것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눈에 드러난 이미지, 친북세력과 좌파세력들이 연합해가지고 벌인 야간 불법집회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이것이 여론에 영향을 줘가지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는 길을 열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통언론이 제 역할을 했느냐? 못했기 때문에 방송이 선동기관화된 것이고, 제대로 된 언론도 그 선동기관화된 방송을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중요한 공약이 그 사람들이 말한 행정수도 건설이었는데-그것은 나중에 밝혀졌지만 행정수도 건설이 아니고 천도였습니다-노무현 쪽에서 행정수도라고 하니까 언론이 행정수도 만든다고 따라갔습니다. 그 말 자체가 이미 誤報(오보)이기도 하고 노무현 편을 드는, 불공정 보도를 한 겁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헌법재판소에 넘어가니까 ‘이것은 행정수도 건설이 아니라 수도이전이다’ 해가지고 헌법위반 판결이 난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 헌법재판소의 헌법위반 판결은 한국기자들에 대한 일종의-심하게 말하면-사망선고입니다. ‘너희들은 기자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그 판결을 보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지 않았다 하면 그게 한국 언론의 위기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아온 것처럼 朝鮮朝(조선조)에서 출발한 한국 언론의 역사는 우리 대한민국이 흘러가는 진로의 중요한 자리에서 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든지 아주 중대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이것은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 정권은 정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나옵니다. 언론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신문만 있다가 잡지도 생기고, 라디오도 생기고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언론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지고 거의 생활 속에 들어와서 한때 우리가 텔레비전을 제4의 벽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인터넷이라는 굉장히 강력한 언론이 덧붙여져서 언론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버리니까 이제는 언론에 의해서 정권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신문만 있었을 때는 어려웠겠죠.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산업화된 나라의 사람들도 하루 24시간 중에서 상당한 시간을 이 언론과 연관시켜서 보냅니다. 한 번 자신의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신문읽고 인터넷보고 텔레비전보고 하는 데 보낸 시간이 몇 시간이냐? 언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언론의 영향력이 크다는 말입니다. 정당 연설이 있을 때 우리가 직접 갑니까? 정당하고 우리가 직접 접촉할 기회가 있습니까? 모두 언론을 통해서 접촉을 하는거죠. 언론이 만들어낸 가상현실, 또는 가짜 현실입니다.
엉터리 기자가 만들어내는 언론의 현실은 가짜입니다. 환상입니다. 텔레비전이 김정일을 비춰주면서 김정일이가 김대중 대통령을 상대로 아주 위트있는 농담을 하는 걸 보여주니까 ‘김정일은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이고 아주 부드러운 사람이다’하는 가상 현실, 가짜 현실이 만들어져가지고 한국사람들 마음 속에서 對北경계심이 사라진 그런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자, 이러니까 언론의 영향력은 정권을 만들어낼 정도로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증하는 것이 최근에 있었던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역사적 대승입니다. 언론의 역할이 없었으면 고이즈미 총리가 그렇게 압승을 할 수가 없었어요. 고이즈미가 어떻게 했냐. 郵政(우정)민영화를 추진했죠. 일본 우체국을 민영화하자는 겁니다. 일본 우체국은 預金庫(예금고)가 약 3조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입니다. 이 민영화를 집권 자민당의 일파가 반대해서 부결시켰을 때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국회를 해산시키고 상황을 국민들에게 직접 물으면서 ‘개혁이냐 反개혁이냐’는 식으로 주제를 던졌습니다.
다른 보통 선거에선 이슈가 여러 개 나오는데 지난 일본 총선거에서는 우정성 개혁이냐 反개혁이냐 하는 쪽으로 선거 잇슈가 명확하게 단일화되었어요. 그것은 고이즈미의 도박인데 언론을 이용한 도박이지요? 언론을 이용하지 않으면 이런 도박이 있을 수가 없죠. 요새 인터넷도 그렇고 특히 텔레비전이 그런데 사람들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감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안을 설명할 때 사실은 모든 사물은 복잡합니다. 주요 이유를 대라 이러면 열 가지 정도는 나옵니다. 그 열 가지 이유를 모두 차근차근 설명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인데 언론을 통해서는 그게 안 먹힙니다. 선거나 언론에서는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하나만 이야기해주어야 보통 사람들이 이해를 하게 되니까요.
언론이란 것은 상당부분 과장이기도 하고 지나친 단순화이기도 합니다. 그 언론의 생리를 잘 이용한 고이즈미가 선거의 주제를 열 가지 주제로 죽 열거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주제로 우정성 개혁, 딱 이렇게 나오면서 국민들에게 ‘찬성하면 자민당을 찍고 반대하면 민주당을 찍어라’ 이런 식으로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의석 3분의 2를 장악했습니다. 더구나 與村野大(여촌야대) 현상이 없어졌어요.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도시에서는 야당이 강하고 촌에서는 자민당이 강했는데 그것이 완전히 뒤집어져가지고 수도권인 동경 근방에서는 10대 1로 자민당이 이겼습니다. 정치를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2007년 선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언론을 누가 장악하느냐, 언론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 어떻게 잡느냐 하는 이런 문제에 의해서 좌파 정권이 계속 될 것이냐 아니면 다른 정상적인 정권이 들어설 것이냐 하는 기로에 놓여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봐서도 언론이 강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있는 이 나라인데 인터넷 정보통신 등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 전통과 결합되었습니다. 이 두 개가 만났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언론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언론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기자가 가져야 할 책임이 굉장히 무거워지는 거죠. 말하자면 내가 쓰는 기사가 정권 창출에 또는 정권교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 하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정확하고 공정한 기사를 써야 한다 이런 뜻입니다.
역사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사를 써야 하니까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입니다. 저도 별로 재주가 없는 사람이 기자라는 생활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난 34년 동안 한국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일을 했다고 봅니다. 제가 다른 직업을 선택했으면 제 재주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텐데 직업을 잘 선택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자는 특권이 있는 직업이고 특혜가 있는 직업입니다. 특혜는 잘못하면 부패하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기자는 특권이 있는 직업입니다. 자, 이제는 정보화 사회니까 완전 기자세상이 됐어요.
문제는 어떻게 좋은 기사를 쓸거냐 하는 거죠. 어떻게 하면 정확한 기사를 쓸거냐. 책임은 커졌는데... 요새 그러면 인터넷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사의 질은 어떠냐? 솔직히 말하면 기사가-요새 나오는 신문 기사, 방송 기사, 나는 주로 신문 기사를 이야기하는 데- 1960년대, 1970년대 기사보다 후퇴했어요. 質的(질적)으로 후퇴했습니다. 첫째 정확하지도 않아요. 한글 전용을 하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모르는 암호가 수두룩하고 공정성이 약합니다.
옛날 기사를 보면 꼭 반대편 기사를 달아줬어요. 또 용감하지가 않아요. 옛날 기자들은 권력과 싸웠습니다. 요새 기자들은 별로 싸우려는 것 같지가 않아요. 옛날 기자는 지면이 적었기 때문에-신문이 그 때 신문은 한 8면 정도였죠. 요새 한 30면 되는, 많을 때는 50면 되는 신문이 아니었습니다-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중복된 문장을 없앨 것이냐. 그래서 어떨 때는 명사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도 ‘-하였다’ 문장 하나 줄일려고 명사형으로 끝나는 문장을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처럼 지면을 아꼈습니다. 요새는 인터넷 등, 지면이 너무 많으니까 쓸데없이 기사를 늘여서 낭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자의 혼을 느낄 수가 없어요. 요새 기자들을 보고 기자의 혼이 살아있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기자의 혼은 뭐냐, 기본적으로 당대 권력에 저항하는 게 기자의 혼입니다. 당대의 권력입니다. 죽은 권력이 아니고요. 지금 전두환, 박정희, 이승만, 김영삼까지 욕하는 게 무슨 정의겠습니까? 그것은 이미 죽은 권력인데. 지금 살아있는 권력은 김대중, 김정일, 노무현 이 세 사람이 아닙니까? 이 세 사람을 상대로 얼마나 진실된 보도를 하기 위해서 싸우느냐 하는 이런 용기 부분에서 과거보다 떨어진다 이런 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내가 옛날 기자이기도 하고 요새 기자이기도 한데 내가 감상적으로 기성세대 기자를 미화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 신문을 찾아서 한 번 읽어보십시오. 그 다음 요즘 신문을 읽어보십시오. 이런 시점에 그러면 뭘 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키는 기자로서-원래 기자는 대한민국을 지킬 필요는 없는데-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지금 잘못하면 적화가 되고 나라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기자와 언론의 결과적인 의무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인 의무라는 말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되어야지 처음부터 나는 애국하겠다 하면 그건 운동가이지 기자는 아닙니다. 좋은 기사를 쓰다보면 그것이 쌓이고 쌓이고 하다보니 우리 국민들이 선동에 속아넘어가지 않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애국이 돼야 합니다. 기자가 당장에 애국을 하겠다 그러면 선언문을 쓰는 게 낫지 어렵게 기사를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실을 보도해야 할 것입니다.
2004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것,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했던 탄핵이라는 것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했고 논거가 분명했습니다. 지금 아마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차라리 그때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이 됐었으면 나라가 좋아졌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언론이 정권과 손을 잡고 친북좌파 단체의 지원을 받으면서, 특히 방송이 kbs, mbc가 이것을 ‘의회 쿠데타’라는 말로 규정해가지고 여론을 몰아가니까 또 다시 한 번 진실이 짓밟히는, 사실이 선동에 묻히고 마는 결과가 2004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쟁점이 되었던, 국회의 단핵소추발의 全과정은 합법적이었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헌적인 행동도 맞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 하의 헌정질서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라 해서 파면을 면하게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새 노무현 대통령이 하고 있는 초헌법적 발언을 볼 때 헌법재판소가 잘못 판단한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이 사람은 그냥 놔두면 또 헌법무시의 범죄를 계속할 사람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대통령을 여기서 빨리 끝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대통령을 파면했을텐데 헌법재판소는 순진하게도 정상참작을 해주면 나가서, 말하자면 유치장에서 나가서 아마 개과천선해가지고 좋은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에 계속 헌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2004년 국회탄핵은 kbs, mbc에 의해서 억울하게, 나쁜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면서 사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가짜 현실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이 가짜 현실은 힘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서 탄핵의 주역이었다 해가지고 홍사덕 전 의원을 공천에서 뺐습니다. 이것은 가짜가 힘을 쓰는 행위입니다. 헌법정신에 맞춰 본다면 홍사덕, 최병렬 이 두 사람이 잘 했어요. 국회가 꼭 해야 할 일을 합법적으로 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은 이념적인 무장이 안돼있는 정당이다 보니까 좋은 일을 해놓고도 나중에 선거에서 밀리니까 마치 자신들이 나쁜 일을 한 것처럼, 자기가 좋은 일을 해놓고도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내가 죄인이 된 것처럼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는 그런 형태입니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느냐 하면 사실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애국기자는 사실만 있어서는 안되고 여기에 신념도 있어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사실에 기초한 신념이 없는 정당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조직은 친목회이지 정권을 잡을 정당이 아니죠.
오늘날 한나라당은 의석수로 보면 우리나라 역사상 두 번째 거대야당입니다. 첫 번째는 물론 과거 한나라당입니다. 과반수였죠. 옛날에 야당은 여당의 3분의 1, 반 정도밖에 안되었지만 그거 가지고 용감하게 투쟁을 했기 때문에 세상을 바꾼 거에요. 지금 한나라당 가지고 용감하게 투쟁하면 국회를 장악합니다. 정상적인 야당이 저 정도의 의석수를 가지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게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자들이 여기 모인 이유도 사실을 보도해서 나라를 지키자, 이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국민들이 뻔히 눈뜨고 있는 앞에서 거짓말이 만들어져 우리 한국인의 여론을 주도해가는 사례가 몇 가지 나오고 있어요. 정권과 방송과 친북세력과 좌파세력이 손을 잡고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퍼뜨리고 1주일이 지나면 국민의 50%가 속는다는 게 여러 가지 통계로써 증명이 됩니다.
열린당의 이 모 의원-지금은 의원이 아니지만-이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고 한나라당이 폭로를 했을 때 열린당은 고문조작이라고 일대 캠페인을 하니까 일주일 뒤 여론조사에서 ‘아마 고문조작일 것이다’라는 여론이 50%를 넘었습니다. 실제는 뭐냐,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게 맞지요. 뭘로 증명되느냐? 1심, 2심, 3심까지의 우리나라 법원의 판단과 본인의 자백이 증명합니다. 사실은 가입한 게 맞는데 어용 언론에 의해서 여론의 50%가 용공조작이라는 쪽으로 속아서, 즉 거짓말이 국민의 마음 속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對北 200만㎾ 송전도 정상적인 국가라면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해서는 안되는 게 맞습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이런 게 아닙니다. 국민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가구당 250만 원이 들어가는, 10년간만 계산해도 25조 원이 들어가는 對北송전, 그것도 적에게 군사력을 강화시켜 줄지 모르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 그런 용도로 무제한적으로, 영구적으로 200만㎾를 보내주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 여론조사를 하니까 절반 이상이 對北 송전을 찬성했습니다. 왜냐? 바로 언론과 야당이 진실을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 조사에 의하면 주한미군 철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53%라고 합니다. 사실은 뭐냐?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의 전력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전쟁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그래도 거짓된 정보에 의해서 53%가 오도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체제를 서로 양보하는 통일방안 찬성이 60%가 넘었어요. 체제를 양보하는 그런 통일방안은 존재할 수가 없어요. 사회주의, 민주주의 사이에서 제3의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재와 자유민주주의, 독재와 자유 사이에 서로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민족반역자와 민족의 정통국가 사이에 타협이 있을 수 없는 것인데 그런 타협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통일하자는 사람이 60%가 되었으니까 이것은 우리 사회가 사실이 죽어가는 사회라는 것이고, 사실이 죽어간다는 것은 기자들이 죽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 모인 것도 기자로서 깨어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깨어나야 국가가 바로 서고 헌법이 지켜지고 사실이 큰 소리를 치게 됩니다. ‘1984년’이라는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문장을 소개합니다.
“2 더하기 2를 4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망하지 않는다.”
2 더하기 2는 4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기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일단 제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월간조선 입력날짜 : 2006-04-0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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