幽默雜事/閭巷漫談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를 쓰지 마라

마장골서생 2009. 7. 24. 13:36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를 쓰지 마라”


  權寧珉(권영민·53·서울대 인문대학장·국어국문학과 교수)씨는 인터넷 사용이 학생들의 글쓰기에 초래한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요즘 학생들은 리포트를 쓰라고 하면 먼저 그 주제에 관해 인터넷에서 검색부터 해본다. 그런 다음 관련된 내용들을 모아 짜깁기를 한다. 자신이 직접 하는 거라곤 내용과 내용 사이에 연결어를 만들어 넣는 정도라고 한다. 단락과 단락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논리적인 사고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생각을 쓰는 건데, 이렇게 짜깁기된 글을 읽어서는 학생들의 사고나 판단력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너무 쉽게 정보를 끌어모으니까 오히려 깊은 사고를 요하는 작업을 방해받는 것 같습니다. 남의 글을 참고한다는 건 자기 생각의 타당성을 입증 받기 위한 보조 수단인데, 따온 정보가 오히려 중심이 되어 버리는 거죠.”

 

  요즘 대학의 교수들은 인터넷식 짜깁기를 막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 등 고민에 빠져 있다. 權교수는 그런 방식으로 쓸 수 없는 과제를 준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발견할 수 없는 작품이나 작가에 관한 과제를 학생 개인별로 할당해 준다. 어떤 교수들은 일체 손으로 써온 리포트만 받기도 한다.

 

  문장이 길어지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논리를 세워 문장을 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장이 길어지면 대체로 핵심 주제를 드러내기 힘들고 연결이나 호응이 맞지 않는 非文(비문)이 되기 쉽다. 접속어와 지시어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도 눈에 띄는 문제점이다. 거의 매 문장마다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해서, ~했는데’등의 말을 많이 쓴다.

 

  “이것은 口語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의 연결은 내적 연결성에 의해 연결이 되는 건데, 접속어를 이용해서 억지로 갖다붙이려 합니다. 내용상 연결되지 않는 말을 접속어에 의해 억지로 연결시키면 더욱 뜻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權교수는 이러한 현상들을 막기 위해 인터넷 어문규정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을 줄일 때는 어떤 식으로 줄이자는 식의 약속이나 규칙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워질 때가 올 것이라며 우려했다.

 

  “좋은 글이란 첫째 자연스러워야 하고, 호흡이 끊기지 않고 맥락이 부드럽게 이어져야 합니다. 무리한 변화로 균형이 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는 규범에 맞는 글이어야 합니다. 제가 남의 글을 읽을 때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한국어 능력 평가 시험

 

  權교수는 2000년 4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들과 함께 (주)이텍스트코리아를 설립했다. 이후 인터넷 사이트 텍스트코리아(www.textkorea.com)와 한국어문정보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우리 언어문자 생활의 규범을 바로 익히고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기반을 확대하는 것, 우리의 대표적인 문헌들을 모두 디지털化해서 인터넷 환경에 맞는 새로운 개념의 텍스트를 개발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예를 들어 홍길동전이 있으면 최초의 原文을 이미지 그대로 뜬 것과 현대문서로 바꾼 것, 주석본 등 하나의 텍스트를 여러 개의 형식으로 만들어 사용자의 목적과 수준에 맞게 제공하는 것이다. 인터넷에다 일종의 한국학 디지털 도서관을 건설하는 것이다.

 

  텍스트코리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언어문자 생활의 규범을 확산시키는 문화운동도 할 생각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한국어 능력평가 시험을 개발하고 있다. 이 시험은 올해 하반기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후, 효과가 판명되면 앞으로 각종 취업시험에까지 확대 적용하게 된다.

 

  “영어공용화론이 나올 정도로 지금은 한국 문화의 위기입니다. 이런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한국인의 한국어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 볼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일생 동안 한국어를 해왔다지만. 과연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측정할 기준이 없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 SAT라는 영어능력평가 시험이 있고, 프랑스와 일본 등도 이와 비슷한 국어 능력 평가 시험이 있습니다. 한국은 중고등학교 때 국어시험은 보지만 한국어 능력을 측정해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러한 식의 정책 제안도 해본 적이 없었지요. 언어교육과 언어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文章상담소의 일

 

  텍스트코리아의 국어문장상담소 코너에서는 모든 문장에 관한 진단 교정, 교열뿐만 아니라 컨설팅 및 교육까지 포함하여 글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장상담소를 통해 일종의 자격-문장상담사, 문장교열사 등도 만들고, 훈련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이다. 전국의 각 대학을 연결시켜 대학마다 학술문장센터 만들고, 그곳에서 학생들의 모든 글을 한 번씩 검토하게 한다. 일종의 문장병원이다.

 

  문장상담소에 글을 교열해 달라고 신청하면 수정 前과 수정 後를 대조하여 보여주고, 원본의 문제점을 진단해 줄 뿐만 아니라, 교정 포인트까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자신의 글이 어디서 왜 틀렸는지를 알게 됨으로써 일종의 교육효과까지 얻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은 유료로 진행되며 미리 문장 수정 샘플을 본 후 마음에 들면 계약을 한다.

 

  “처음 시도해 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특히 생활용품이나 공산품을 제조하는 회사에서 연락이 많이 옵니다. 그런 곳에서는 사용 설명서를 만들 때 어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보고서 서식의 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용도에 맞는 글의 틀과 용어 사용법을 지도해 줍니다. 개인 저작물에 대한 의뢰도 많구요.

 

  외국은 편집자가 많고, 전문 에디터의 검토를 거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글쓴이들이 자기 글에 손을 못 대게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작가라 하더라도) 교열과정을 거치는 것이 안전 합니다. 출판사 편집자들도 각각이므로 이들을 위한 규범도 만들어 주고, 자격증을 갖춘 전문편집인을 양성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죠.”

 

  그는 글쓰기 연습 방법으로 일과계획을 정리하거나 일기를 쓸 것을 권한다. 메모가 아닌 문장으로 만들어 쓰는 연습을 통해 평소에 글쓰는 것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메일을 보낼 때도 격식 있게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보내는 연습을 하면 글쓰기에 많은 향상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월간조선 입력날짜 : 2006-05-09 (11:29)